그리움, 피고

당신이 가슴 속에 담아서 눈에 담고 있는 지금 이 밤의 풍경화는 어느 도시의 것인가요? 제주도? 오키나와? 하노이? 호놀롤루? 아름답지만요 우리는 자칫하면 어여쁜 그림을 보지 못 하게 될 수도 있었는데 천만다행이지 않아요? 우리의 사계절 전에는 저기저기 사람들이 나도는 길거리 위에서 성행한 끝을 모를 봄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 봄을 끝내기에는 아직도 꽃이 피...

드높은 푸른 하늘을 담아낸 것인지 아마존 강으로 흘러온 바다를 담아낸 것인지 나는 하나도 모르지만은 피라냐들이 서슬 퍼런 비늘을 둘렀습니다 파란 피라냐들은 제아무리 혼잡한 흙탕물에서도 하나만은 집요하게 집착해옵니다 그것은 제 비늘들과 색이 정반대인 시뻘건 피였습니다 한 방울이더라도 향만 있더라도 킁킁거리고는 첨예해 모든 생명을 찢어 갈길 듯한 이빨을 격렬하...

거리에는 시인들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거리 위의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발맞춰 며칠 몇 주마다 새 옷을 버리고 다시 새 옷을 사입고 네온사인이 빛나는 밤의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친구 혹은 가족과 떠들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거리의 지하철 입구에는 손이 없거나 다리를 못 움직이는, 혹은 소중한 이의 아픔에 대한 세상의 마땅한 대응을 호소하는 세상의 때...

하늘과 우주 비행선은 비슷하다 둘 다 천천히 저 깊은 아래에서 솟아올라, 날아올라 드높아 누구도 닿지 못 할 고도에 자리한 텅 빈 푸른 터전에 자리를 곧게 잡는다 그러나 때로는 높은 곳에서 서성이면서 자신의 결점을 간직만 하다 터져서, 산산히 깨져서, 부수어지며 추락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는 수많은 등불을 날려 저 곳에 높이 띄워 보내야 한다 지...

어린 아이에게도 그 아이의 엄마 아빠에게도 동네 이웃들에게도 예쁨받던 곱디 고운 인형 하나 아담한 인형 조그만 코와 초롱초롱한 눈 핏기 도는 입과 피부 사랑 받아야 마땅한 어린 아이를 꼭 빼닮아있었다 사람들의 품 속에서 방의 한 구석을 꿰차 추억 몇 장을 채우며 푸른 하늘을 흐르는 구름과 함께 여러 날을 보냈다 몇 년이 지난 뒤, 지금 예전에는 사랑받아야 ...

내 손과 혀는 하늘을 향해 뻗어나갔다 자라나다 서서히 굳어지고 갈색 비늘을 둘러서 생겨난 나뭇가지들은 그렇게 하늘을 향해 첨예한 가시를 세워 치켜들었다 그건 가뭄에도 단비를 내려주지 않는 세상의 삭막한 사막화 탓이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나누지 않았다 자비를 갈구하며 펼친 초록색 잎은 어느새 나를 지키는 검이 되어 주었다 결핍에 말라붙어가던 줄기는 나를 수...

뭘 말하던 말할 수 없으니

유년기를 지나 성년이 되었으나 뭘 말하던 말할 수 없으니 대가 바라고 일을 해서 먹이를 받아도 결국 먹을 수 없고 끝내 먹히는 먹이가 될 머릿수 막힌 입들을 달고는 입을 뻥긋 뻥긋 해보지만 그래봤자 뻐끔 뻐끔 거리듯 물 속에서 잠깐 오르다 사라지는 기포처럼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만약에 함부로 말을 하고 살면, 솔직하게 살아간다면, 죄악이 쌓여 일찍 죽는다...

밤하늘 위에서 거창하게 점멸하던 거친 빛 여러 갈래.

도심을 가득 채운 밤 달은 휘황하지 못 하고 은은하기만 하다 밤하늘 아래에서 지친 이들이 한숨을 쉬며 입김을 내고 초록색 약을 말아 피우고 담배 개비를 피우며 매연을 잔뜩 내어서 끝내 먹구름이 나리면 한탄의 덩어리가 응어리 맺으면 뭉친 것들이 맞부딪히며 수많은 불씨들은 사방으로 튀어서 여러 갈래를 그리는 궤적은 땅으로 내리 꽂히는 창이 된다 밤하늘 위에서 ...

그때로 돌아갈 수가 있을까 아낌없이 사랑하던 곳에서 마음껏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살짝 녹이 슬어 도색이 벗겨진 정글짐에 올라가서 놀이터를 내다보며 놀이터와 근처 풀숲에까지 노니며 숨바꼭질을 하고는 했던 어린 시절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입을 모으면 다 같이 미끄럼틀 안으로 들어가 해가 질 때까지 숨어서 꺄르륵 웃고 내일은 다들 뭐 하니, 내일 같이 뭐 하고 ...

발걸음이 누구보다 더딘, 어리고 여린 열 몇살의 아이들. 우리는 다 같이 먼 길을 걷자고 입을 모아서 이야기했다. 지쳐서 길 위에 털썩 쓰러져도, 흙투성이인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며 '괜찮아. 우리 땐 다 그런댔어.' 라며 다독여주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긴다. 언젠가는 저 멀리 지평선을 넘어보고 싶다고. 언젠가는 지구 반대편의 바다를 보고 싶다고. 언젠가는...